가이드와 스토리

땅, 바다, 그리고 하늘: 시레토코의 대자연

일본의 북동부 먼 곳에는 오호츠크해까지 산이 많은 반도가 펼쳐집니다. 토착민 아이누족 원주민들은 이곳을 ‘시레톡’, 즉 땅의 끝자락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온화한 날씨의 2019년 6월 아침, 저는 에코 투어 전문 여행사 피치오와 함께 가이드 동반 야생동물 투어를 통해 시레토코 국립공원으로 향하는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도쿄에서 메만베쓰까지 비행기로 이동한 후 2시간 가까이 운전을 하며 정착촌과 농지를 지나니, 드디어 땅의 끝으로 향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저희는 산과 바다 사이에 있는 단 하나뿐인 도로를 이용해 북동쪽으로 해안을 따라 계속 이동했습니다.

우토로에서 바라보는 노을

시레토코는 시레토코 반도의 정상 부분에 자리한 외딴 지역으로, 일본에서 사람의 손을 가장 타지 않은 국립공원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호츠크해 쪽으로 돌출한 형상을 하고 있으며 빽빽한 숲과 반도의 중심을 관통하는 시레토코 산맥의 바위투성이 꼭대기도 볼 수 있습니다. 공원은 눈 속에 파묻혀 있고, 긴 겨울에는 유빙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험준한 자연 그대로의 환경으로 인해 매우 다양한 동물들의 서식지가 되었고, 최근에는 야생동물 보존에 중점을 두는 지속 가능한 관광을 즐길 수 있는 일본 최고의 여행지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반도의 다양한 자연 경관을 구경하고, 야생동물을 만나보는 것은 사실 여행을 계획한 주 목적이기도 했습니다. 도보로 진행한 탐방은 공원의 남쪽 절반 정도와 수일 간 진행되는 힘든 하이킹으로만 접근 가능한 북쪽으로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시레토코 반도의 북쪽 지역은 관리가 되지 않는 곳이며 큰곰들과 마주칠 위험이 높기 때문에, 고도로 숙련된 야생 탐험가만 방문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다른 구역에서도 독수리, 사슴, 고래 등 많은 동물과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포착할 수 있습니다.

북쪽 먼 곳에 도착하다

제가 마지막으로 일본 북부의 섬 홋카이도를 찾았던 때는 겨울이었습니다. 아사히카와 근처에 있는 깨끗한 눈에서 스키를 즐기는 전형적인 홋카이도 여행 경험이었습니다. 가이드를 맡은 마사야 쿠스베와 마코토 야마자키에 따르면, 시레토코가 홋카이도의 다른 지역들보다 훨씬 크게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겨울에 오면 유빙 덩어리가 바다를 떠다니는데, 때로는 수평선에 묶인 듯 걸치기도 하고 때로는 해안을 가득 메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희가 여행을 한 시기는 생기 넘치는 고산화와 녹지가 가득한 6월이었습니다.

큰원추리 고산화(사진 제공: Jonathon Kram)

저희는 바다 너머로 노을이 지는 시간에 맞춰 국립공원 남서부 끝자락에 있는 우토로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근처에는 무거워보이는 짐을 실은 자전거 여행객이 캠핑 전 잠시 멈춰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습니다. 공원의 남쪽 절반 정도는 따뜻한 계절 일본 대부분을 뒤덮는 높은 습도를 피해 사이클을 타기에 훌륭한 장소입니다.

저희는 야생동물 관찰을 늦추고 싶지 않았기에 야간 운전을 위해 차로 돌아왔습니다. 한 시간이 넘도록 사슴 몇 마리, 호기심 가득한 여우 두 마리와 너구리 두어 마리를 발견했는데, 처음엔 자동차 불빛에 놀랐지만 곧 덤불 아래에 있는 벌레와 산딸기를 찾아 킁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동물들이 아침 식사를 즐길 때, 저희는 날이 밝은 후 더 탐방할 수 있기를 고대하며 잠을 청했습니다.

북방여우(사진 제공: Jonathon Kram)

시레토코의 자연 보호하기

시레토코에는 일본 북부와 쿠릴 열도의 토착민인 아이누족이 오랫동안 거주했습니다. 그들의 전통적인 삶의 방식은 신이 자연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정령 신앙과 섞여있습니다.

시레토코는 아이누 신들 중 이 지역의 삶에서 핵심적인 요소를 보호하는 가장 중요한 몇몇 신의 근거지입니다. 큰곰은 산의 신, 범고래는 바다의 신, 보기 힘든 블래키스턴 물고기잡이 부엉이(세계 최대 크기의 부엉이)는 마을의 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처럼 존엄한 동물을 직접 목격하는 것은 스릴 넘치는 경험입니다. 이들이 아이누족 문화에서 왜 그토록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 직감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시레토코는 1964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200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관리 및 야생 동물 보호가 시레토코의 중점 과제가 되었고, 이러한 기본 원칙은 아이누족 문화와 불가분의 관계가 되었습니다. 이 지역에는 800여 종의 식물과 약 500종의 동물이 토착종으로 존재하며, 현지인 및 방문객들과 이를 공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생태관광 사업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사업 계획에는 시레토코 고코(시레토코 5호) 지역의 초목 보존을 위한 이중식 도보 설치, 그리고 2박 이상의 일정 권장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야간 야생동물 투어에서 만난 너구리(사진 제공: Jonathon Kram)

네무로 해협에서 고래 구경하기

공원의 서부와 동부 해안을 연결하는 334번 국도(일명 시레토코 패스)에서부터 라우스산의 원뿔이 보초를 서듯 시레토코 반도에 솟아 있습니다. 저희는 6월에 이 길을 건넜기 때문에 녹지 않은 눈이 바위 표면과 숲에 남아 있었습니다. 가을에는 풍경 전체가 붉은색과 황금색으로 물들며, 겨울이 오면 접근이 불가능해집니다.

시레토코 산길에서 바라본 라우스산 풍경

저희는 네무로 해협으로 향하는 관문 라우스 항구로 향하는 길을 계속 따라갔습니다. 이 해협은 가장 넓은 곳이 43km, 가장 깊은 곳은 수심 2,500m인 바다입니다. 저희는 알락돌고래와 밍크고래를 보기 위해 물가로 갈 예정이었고, 운이 좋다면 범고래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6월에는 세가락갈매기, 풀머갈매기, 그리고 가끔 알바트로스와 같은 새도 볼 수 있습니다.

저희는 고래 그림이 그려진 밝은 노란색 구명조끼를 입고 작은 보트에 올라 출발했습니다. 오래 지나지 않아 보트 옆쪽 작은곱등어들의 꼬리가 튕겨내는 물방울들이 물보라를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이 친구들은 호기심과 장난기가 많다”고 가이드 마사야가 말했습니다. “보통 해수면 근처에 머무르기 때문에 꽤 보기 쉽습니다. 하지만 물장구를 많이 치기 때문에 선명한 모습을 보기가 어렵죠.”

알락돌고래가 우리를 잠시 동안 쫓아다녔는데, 갑자기 시레토코 해안선 쪽으로 방향을 트니 그제서야 떠났습니다. 선장은 근처에 범고래가 나타났다는 보고를 들었고, 저희는 이를 보기 위해 경로를 변경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놀라움이 가득한 함성이 들렸고 여러 카메라가 한곳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커다란 등지느러미가 물을 가르며 뭉툭한 검정색 머리가 물기둥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네무로 해협에 나타난 범고래(사진 제공: Jonathon Kram)

모두가 조용히 지켜보았는데, 범고래가 다시 나타날 때마다 고요함을 뚫고 셔터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희가 처음 본 것은 “몸 크기와 더불어 약 1.8m가 넘는 삼각 지느러미로 식별할 수 있는 수컷 범고래”라고 마사야가 조용히 설명했습니다. 암컷 범고래도 있었는데, 더 작고 굽은 지느러미를 가졌고 새끼와 함께 있었습니다. 마사야의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이 고래들은 가족을 만듭니다. 그래서 여름에는 혼자 있는 것보다 무리지어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얼마 후 고래들은 멀리 헤엄쳐갔고, 저희는 진짜 바다의 신을 만난 듯한 기분을 느끼며 라우스로 향했습니다.

네무로 해협에서 크루즈 즐기기(사진 제공: Jonathon Kram)

바다의 야생동물 찾아보기

라우스 비지터 센터에서 보고 들은 지식을 토대로, 저희는 바다에 아주 많은 야생동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튿날 작은 어촌 마을 아이도마리로 향했습니다. 이곳은 도로로 이동할 수 있는 가장 먼 북부 지역입니다. 이보다 멀리 하이킹 또는 카약킹을 하려면 루사 필드 하우스에서 우선 멈춰서 조수와 큰곰에 관한 현황 정보를 확인해야 합니다.

관광 보트에서 바라본 큰곰(사진 제공: Jonathon Kram)

저희는 해안에 꽤 가까이 갈 수 있는 작고 개방된 배틑 타고 출발했습니다. 저희는 바다가 아니라 육지에 초점을 두고 있었습니다.

“시레토코에는 큰곰이 아주 많다”고 마사야는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사람들이 이 곰을 보기 위해 이곳을 돌아다니는 것을 원치 않아요. 큰곰을 존중하는 마음을 갖고, 가까이 접근하지 마세요. 곰들이 간혹 먹이를 찾아 해안으로 오기 때문에, 보트 여행은 곰들을 방해하지 않고 지켜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산에 깔린 안개(사진 제공: Jonathon Kram)

저희가 출발할 무렵, 낮게 깔린 구름이 산을 덮었고 안개가 절벽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접근하자 시끄러운 갈매기나 가마우지가 날개를 펴고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보이는 바위들이 안개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가파른 비탈면을 따라 암석 가득한 해안선에서부터 초목이 뻗어있었고, 반짝이는 폭포로 가로막혀 있었습니다. 저희는 금세 밝은색의 북방여우와 에조사슴 두 마리를 발견했는데, 멋진 전망 안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작게 보였습니다.

그러던 중 암석이 가득한 곶 근처에 갑자기 무언가가 나타났습니다. 부드럽게 찰랑이는 파도와 높은 조석점 사이를 따라 거닐던 것은 다름아닌 큰곰이었습니다. 곰은 이따금 멈춰 킁킁대기도 하고 무언가를 먹기도 했습니다. 성큼성큼 걷는 걸음걸이는 여유로웠고, 긴 발톱이 있는 발은 약간 안쪽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곰은 인형처럼 귀엽고 친근한 인상이었고, 전혀 위협적이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곰은 저희 쪽을 향해 고개를 들었습니다. 꽤 긴 시간 동안 곰은 저희가 해안을 오르내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 긴 발톱과 털 아래에서 움직이는 근육을 본 순간 저는 숨이 막혔고 안내소에서 본 무시무시한 이빨이 기억났습니다. 문득 이 아름답고 강인한 큰곰의 서식지를 침범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보트에 타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라 무척 안심이 되었습니다.

곰은 저희가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했는지 고개를 내리고 계속 먹이를 찾아 나섰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머무는 것은 그다지 좋지 않았기에, 자리를 옮기기 전 조금 더 곰을 관찰했습니다.

후레페노타키 폭포로 향하는 도보 코스

시레토코에서의 마지막 날은 지상 코스를 택했습니다. 전날 거대한 곰을 목격한 후 가이드 마코토가 하이킹에 호신용 종을 챙겨온 이유를 알게 됐고, 우연히라도 곰과 가까이 마주치는 것은 절대 피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코스는 우토로에 있는 시레토코 자연 센터에서 시작했는데, 후레페노타키 폭포로 향하는 둘레길에 오르기 전 이 근방에서 마지막으로 곰이 눈에 띈 지 2주 정도 지났다는 소식을 듣고 내심 마음이 놓였습니다.

후레페노타키 폭포

전날의 변덕스럽던 날씨와 달리 높고 청명한 하늘에 구름이 흩뿌려져 있었고, 생기 넘치는 초록색 대나무밭과 나무들이 우거진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가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듣기 위해 멈춰서기도 하며 저희는 나무그늘에 도착했습니다. 저희가 알아차리기 전에 마코토가 새들의 울음소리로 종류를 알려주었습니다.

둘레길 막바지에 저희는 바다로 쏟아지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폭포, 후레페노타키 폭포를 내려다보는 전망대로 올라갔습니다. 오른편으로는 시레토코 산맥의 검고 아름다운 자태가 펼쳐졌고 왼편으로는 오호츠크해가 수평선 너머로 뻗어 있었는데, 유람선들이 지나다니며 물 위에 남기는 흔적만이 잔잔한 바다 위를 수놓고 있었습니다.

시레토코 산맥

모두가 시원한 바람을 만끽하며 휴식을 취했고, 그림자가 저희 앞에 있는 초원 위로 지나갔습니다. 모코토가 들뜬 목소리로 그림자를 드리우는 존재를 가리켰는데, 다름아닌 흰꼬리수리였습니다. 억센 발톱과 곡선 모양의 부리는 지상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여름에는 흰꼬리수리를 쉽게 보기 어렵다”고 마코토가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겨울엔 유빙에 앉아 있거나 항구에서 생선잡이 배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참수리와 흰꼬리수리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곳 땅끝에서 저희 일행은 머리 위를 빙글빙글 날아다니는 독수리를 바라보았고, 시레토코의 위엄 넘치는 야생동물을 목격할 수 있음에 감사했으며, 직접 본 야생 그대로의 모습을 남겨놓을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글쓴이: Rebecca Halle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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